그 나라와 그의만 구하는 자의 복





㉮ 무디 선생의 예


 그러나, 무디 선생의 성경학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그대로 깨끗하게 나가고 있는 줄만 제가 알았는데 나는 그 서적을 그리 보지를 안 했습니다. 무디 선생의 서적을 언제 누가 한 권 사다 줘서 꼭 내가 두 페이지인가 세 페이지인가 읽었어. 세 페이지인가 두 페이지인가 읽었습니다. 읽으니까 내가 잘 모르는데 어제 어떤 분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그래 설교를 평하면서 무디 선생은 설교를 꼭 오 분 했다 이렇게 말해요. *주일학교* 무디 선생은 설교할 때 오 분씩 설교를 하셨다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래 내가 그 말을 듣고 ‘야 짧게 했는가보다’ 그거 좀 이상해서 `그러면 어떻게 설교하는데 오 분을 설교를 해?’ 이래 물으니까 꼭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요거는 뭣 뭐 요렇게 하고 조렇게 하고 하는 그것으로 끝낸대요. 그것으로 끝난다 이래.





그러니까, 처음에 들을 때는 그렇지마는서도 사람들이 그 말씀 듣고 요렇게 하고 조렇게 하고 하니까, 딴게 아무것도 없으니까. 그 말씀 듣고는 그렇게 해야 되겠고 조렇게 해야 되겠고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대로 하고 보니 일들이 되어져서 그만 {그분에게,} 그분의 가르치는 것은 듣고 행하면 된다는 것을 인정하니까 그 미국이 부패해졌을 때에 그 나라를 그때에 다시 복구시킨 그런 큰 역할을 했다 그 말을 듣고서 그 내가 깜짝 놀랐습니다.





‘언제 그 책을 봤느냐?’ 참 말은 내가 안 해도 속으로, 이거 내가 참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이거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옛날 뭐 켸켸묵은 내 그저 주관식으로만 했다 그런 것을 느껴졌습니다. 그래서 차차차 저도 경험하는 가운데에서 이 설교가 자꾸 간추려지고 짧아집니다. 나 설교하는 거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 설교하는 거는 내가 봅니다.




㉯ 다른 사람의 설교평

 다른 사람 설교하는 것 보면 거게 대해서는 그만 이래라 저래라 그라면 다 돼 버리는데 그 외에 쓸데 없는 뭣을 꺼부지기를 남산 꺼부지기 북산 꺼부지기 꺼머다가서 또 현재에 좀 뉴스도 좀 거기다 가하고 또 과학도 또 하나 말하고 철학도 말하고, 그러니까 나는 과학에 대해서도 상식이 있습니다. 철학에 대해서도 상식이 있습니다. 정치에 대해서도 상식이 있읍니다. 현재에 소식에 대해서도 뭐이 있습니다. 그 자기 자랑하는 그것이 많지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오히려 파묻혀지고 만다 하는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.


그래서, 저거 다, 다 떼 버리고 다 떼 버리고 알맹이, 알맹이 어째 살아야 되느냐 하는 그거는 거게는 하나도 없다. 백지 껍데기뿐이지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. 또 어떤 설교는 그거 저거 다 떼 버리고 그것만 그만 말했으면 참 좋겠다 또 그런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. 느껴서 저도 그래 인제 설교를 앞으로 지금 그래 할라고 내가 그걸 생각합니다.

그래서, 이제 여게서 오늘, 이라면 좀 알아 듣기 어렵지마는 가서 새기면 될 것이고 본문을 많이 읽어보면 될 것입니다.